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제주도

살면서 제주도는 한번 가봤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너무 많은 것을 보느라 정작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그 후로는 제주도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다음 글 속에 주제를 찾으세요 고등학생 때는
글 속에 숨어있는 주제를 찾아야 했다. 주제는
처음 문장과 끝 문장을 주위 깊게 보면 된다고 했는데
주제는 보이지 않았다 문제를 만든 사람이 야속했다.

손재주를 기르기 위해서 부단히 연습했다.
이론도 공부하고 작은방에서 같은 것을 반복했다.
재주는 내가 부리고 돈은 벌지는 못했다.

나이가 먹으니깐 사람들이 네 주제를 알라고 했다.
나는 소크라테스가 환생한 줄 알았다.
주제는 학생 때나 찾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재주로 나의 주제를 증명해야한다.

언젠가 제주도에 갈 것이다. 바람 많고 여자가 많고 돌이 많은 곳.

2017년 10월 18일 수요일

우리집 정치색깔

우리집은 삼대가 함께 살고 있는 대가족이다.

지난 대선에
할머니는 홍준표의원을 지지했고
부모님은 안철수의원을 지지했고
나는 문재인을 지지했다

(꼭 대놓고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런것 같다.)

우리집은 정치적인 견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잘? 살아가고 있다.

누가 가정은 작은 국가라고 했나?

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정류장

살아가면서 배운것은
더 멀리 가려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젊은시절은 기다림을 배우는 시간이였다. 
출발과 도착은 같은 곳이고 
과연 그 곳에 가면 나는 달라져 있을까? 
보물섬을 가려다 보물이 되어버린 사람아.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속리산 문장대 등반


2017년 10월 9일 (한글날) 월요일 아침 8시 30분에 출발했다. 

지난 여름 휴가를 딱히 어디로 가지 못해서, 재훈이형에게 추석연휴 길으니깐 

어디좀 놀러가면 좋겠다. 제안하고 날짜를 하루 잡아서 속리산을 가게되었다. 

2년전에 자전거를 타고서 혼자서 올라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도 하고, 

그때는 천왕봉을 올라갔는데 사람들이 속리산 하면 다들.. 문장대, 문장대 해서, 

한번을 올라가리라 맘먹었었는데 오늘은 문장대 코스로 해서 올라갔다. 

사실 문장대는 천왕봉보다. 4m 낮다. 속리산은 정말 부드러운 길인것 같다. 

몇달전에 갔었던 계룡산 보다, 동내 뒷산인 계족산보다 등반하기 쉬운것 같다. 

물론 그곳보다 훨씬 높지만.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에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나희덕 속리산에서'




다 올라갈 때 까지 속리산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다 올라가서는 모든것을 보여주었다. 

이제 막 올라온 외국인에게 피니쉬 라고 하니깐 

올모스트라고 한다. 또 그다음에 할프라고 한다. 

맞는 말이였다. 정상은 끝이 아니라 절반이였다. 














2017년 9월 27일 수요일

부분마취

지난주 인터넷 설치하다가 맨발로 드릴을 밟아서, 왼쪽 엄지발가락 밑에를 베였다.
날카로운것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프진 않았지만 피가 무척이나 많이 나왔고, 
당황한 나는 앞집아저씨에게 붕대같은게 있냐고 물었고 아저씨는 검은테이프로 감으라고 조언을 해줬고, 하루동안 전기테이프로 지혈을 했다. 다행이 피는 멈추었고 상처의 상태는 심각하지 않고
(겉에 피부가 살짝 벌어졌다.) 걸을 때마다 신경쓰일정도로 따끔거릴정도 였지만 참을 만했다. 
몇일 동안.

문제는 오늘 화장실을 쓰다가 무심코 나오는데 세면대 하수구가 땅속으로 들어가있지 않고 
밖으로 돌출 되어있는데 그 부분에 왼쪽 발을 부딪혔고, 역시다 날카로운 부분에 베여서 
또 피가 나왔다. 우연찮게도 이번에는 검지발가락이였다. 저번에 처럼 똑같은 상황이라서 
검은 테이프로 우선 감아서 조치를 취했고, 을지병원을 가기위해서 샤워도 하고, 옷도 새로 갈아입은
상태에서 좀 걷는데 이번에는 아프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걸어가기에 만만한 거리가 없었고, 버스타고 가다가 정류장 근처에 있는 병원이 
생각이 나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병원에가서 의사 선생에게 발을 보여주니깐 
바로 꼬매자고 하셨다. 아무래도 양말에 묻은 피를 보고 그렇게 말한것 같다. 

무슨 조치실에 갔고, 간호사가 누워있으라고 하고 다른 간호사는 여러가지 수술 준비를 하는 듯한 모습이였다. 한 3분후 병원 원장이 와서 먼저 주사기로 마취를 하는데 나보고 쫌 따끔 거릴꺼예요.
말해줬다. 사실 따끔거리는 정도 아니다. 무진장 아픈거다. 19살때 병원에가서 부분마치 해본 기억이 있어서, 또 주변에 아가씨도 있어서 이를 꽉깨물고 고통을 참았다. 주사는 3군데 정도 놓은것 같다. 그리고 몇번을 꼬맺는지 보지도 못하고 드레싱을 했다. 

그리고 병원을 나와서 씩씩하게 걸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다시 을지병원으로 가는데 ... 
가는 도중 점점 마취가 풀리기 시작했다. 욱식 욱식 심장 박동수에 따라서 상처부위에 고통이 
느껴졌다. 버스안이라서 아파도 소리도 못내고 그냥 표정만 이랬다 저랬다 했다. 
똑바로 걷지도 못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십리길 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다행이 잘 도착하고 찬양도 잘 부르고, 집에도 무사히왔다. 

엄마한테 다쳤다고 하니깐 엄마가 요새 교회를 안가서 그렇다고 한다. 
무슨 소리냐고, 그냥 내가 부주의해서 다친거지.. 무슨.

어렸을 때 치과에서 
이를 빼고 나오는 길에 
엄마는 나폴레옹 빵집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주셨다

이가 빠진 허전한 틈사이로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지나갔다

뚜벅뚜벅 병원을 나오는 길에 
옛생각이 그렇게 지나간다 

2017년 9월 26일 화요일

가벼움에 대하여

카페에서 손님이 주문을 하려고 멀뚱멀뚱 서있는다.
그세 강물은 1m나 흘렀을 시간이였다.
나는 동그란 눈으로 주문을 기다리면서, 두개남은 바나나를 처리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손님, 바나나 쥬스는 어떠세요?" 권유했고. 손님은 괜찮다고 했다.
이제 카페에서 일한지 7개월째 되었으니 그리 적은 시간을 일한것이 아니다.
능숙한 마음으로 어렵지 않게 메뉴를 만들었고, 손님에게 대접했다.
아쉽지만 내가 일하는 카페는 다음달로 사업을 접는다.
나는 원래 10월까지 일하기로했고,
내가 일했던 카페가 사업을 그만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맘이 조금은 있다.
어찌되었든 카페는 가벼운 사업이다. 그말은
오늘은 아메리카노를 굳이 먹지 않는다해서 생명의 아무런 지장이 없고,
목숨을 다해서 카페에서 주문을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심각한것이 아무것도 없다. 가볍게 즐기고 가볍게 마시고 가면 끝인것이다.
요즘 내가 만나는 사람도 일도 모든것이 가벼워 지고 있다.
가벼워지는 관계, 가벼워진 음악, 가벼워지는 예배, 가벼워지는 생활, 일들 . . .
또 모르지 모든것들을 무겁게 만들어주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독일어 'schwer' 무겁다, 어렵다란 두가지 뜻을 같이 갖고 있다)


원주 호이시 (일본식 가정식)

호이시  주소 :  강원 원주시 양지뜰3길 19-2 1층 전화 번호 : 0507-1442-3260 영업시간 : 월~토 11:00~20:00 매주 일요일 휴무, 15:00~1700 브레이크 타임 주차 상가 주변 노지 원주에 일식당이 새로 생겼다는 정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