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2일 금요일

폭력의 역사

88년도에 태어난 내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폭력의 역사

내가 처음 접한 폭력은 아버지로 부터이다.
60년대 즈음에 태어난 아버지는 술주정이 심했고
당신이 혈기왕성하던 30대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유리창을 교체할만큼 집은 어수선했다.
금요일 토요일저녁은 배갯잎이 눈물로 적지 않은 날이 없었다.
사람이 평생 울어야 할 눈물을 다 쏟았다.
그리고 어릴때는 동내마다 무서운형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락실을 다니거나 도직질을 하거나 가끔 친절하면도 있지만 꼭지가 돌면
주먹이 먼저 날라오곤했다.  내가 어린시절 뉴스에는 청소년 문제가 늘 보도됬다.
그들은 밤마다 맥주로 염색을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를 했고, 본드를 마시기도 했다.
키가 작고 부끄러움이 많던나는 학교를 다녀도 친구가 없고 말 수 가 없었다.
그런 소심한 내가 걱정되었는지 엄마는 태권도 학원을 보냈고
자의적든지 타의적이던지 몸을 단련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 나를 헤치질 못할 만큼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학교 시절이 였다.
중학교는 너무나 커다란 세계였다. 복도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살만 많은 형 누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여러 초등학교에서 모인 친구들은 질서를 잡히지 않은채 눈치를 보며
누가 더 강하고 약한지 속으로 각자의 자리를 찾기를 원했다.
키도 작은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마다 싸움은 불가피했다.
나름 깡도 있고 운동신경도 있도 있던 나는 어느정도의 자리를 찾았고 만족했다.
문제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흔히들 말하는 짱인 녀석과 같은 반이 되었다.
엄석대 같은 녀석은 키도 엄청크고 성격도 불같았지만 또래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아 나는 선택의 길에 있었다. 그 녀석과 친하게 지내면서 평탄하게 보낼것인가 ?
아니면 눈치를 보면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폭력을 당하면서 살것인가?
답은 빨리 내려졌다. 나는 녀석과 친하기로 선택했고 부끄럽지만
엄석대에게 숙이고 들어와 평안했던 한병태 같았다.
그 시절 교복을 입은 남자 학생들이 10명넘게 일열 병대로 집으로 가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당시 티비드라마에서 학교가 나왔고, 영화는 맨 친구같은 깡패영화만 가득했다.

그렇게 대전에 있는 남자 인문계고등학교를 갔다.

아 지긋지긋한 이런저런거 신경쓰지 않고 입시가 중요한 학교로 갔다.
이제 폭력은 안녕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는 더 큰 세계였다.
남자학생들에게는 누가더 센지 누가더 약한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었다.
그건 바로 성적.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해서 누가더 좋은 대학을 갈지가 더 중요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치고 밖고 싸운적은 없었던거 같다.
그러나 이놈의 학교는 선생이 방망이를 들고나니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체벌을 했다.
시퍼란 멍은 엉덩이와 허벅지에 없는 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촌스러운 시절이다.
이상하게 학생에게 엄격한 처벌이 사라진건 교육부장관의 멍령도 아닌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였다.
그건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생기고서 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2006년이 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니 나는 이 지긋지긋한 체벌의 마지막 세대가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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