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a fan 팬인가, 제자인가’ 를 읽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성경구절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팬 vs 제자
책 초반은 이 둘의 개념을 설명을 해준다. 팬은 단순 열광을 진정한 헌신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제자는 대가를 치르며 그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얼마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어떤 물건이든지, 서비스든지 그 값이 있다. 당연히 좋은 것은 값이 많이 나가고 덜 좋은 것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하지만 문제는 존재는 하지만 그 값을 정할 수 없는 가치나 신념이다. 예를 들자면 우정이나, 연대, 헌신, 사랑, 등등 이런 가치에 이 책에서는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삶을 ‘얼마나’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부’로 대답을 하고 있다.
부르심
누가 그의 제자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이 책에서는 자격은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특별히 감동받은 부분도 그렇다. 모두가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여인이 예수님에게 자신의 머리로 그 발을 씻기며 그녀의 옥합을 깨뜨려 그 발에 부은것 말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유다는 어리석게도 그 헌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옥합이 얼마인지 계산을 하고 있다. 차라리 그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어떻겠냐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녀가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 보다 예수가 누구신지 더 잘 알았던것 같다. 그리고 현장 분위기가 그런것이 아닌데 그녀는 용기를 내어 행동으로 그녀의 믿음을 보였다.
기회비용
A와 B중 A를 선택하므로 얻을 수 없는 B에 대한 가치를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그러면 제자된 삶을 선택하므로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에 아쉬운점은 제자된 삶을 살기위해서 우리가 생명도 삶도 우리가 가진 모든것을 드려야 하는데 결국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인가? 이 책에서는 정답을 들 을 수가 없다. 사실 그것이 믿음 인것 같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아브람은 자기 갈바를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았던가?
정답, 헌신에 대한 결과 그 끝은 알 수 없지만 전부(최선)를 다 하여야 하는것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삶인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끝에 대하여 의심하거나 혹은 그 값을 계산하여 시작조차도 못하진 않았을까? 아니면 시작은 하였어도 힘이 들어 다른 생각이 올라오진 않았는가? 나는 믿는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제자들에게는 뱀을 밝아서 이길 권능을 주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