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7일 일요일
계란 프라이와 행복
2020년 10월 27일 화요일
2020년 10월 20일 화요일
제 일기장을 본다 하여도
제 일기장을 저 몰래 몰래 읽고 있는거 다 알고 있습니다.
그치만 그래도 저를 잘 모르실 겁니다.
왜냐면 저는 저에게도 자주 거짓말을 하니까요.
몰래 읽고 있는걸 다 알면서 왜 일기장을 숨기지 않냐고요?
그건 일종의 귀찮음이겠죠.
아니면 진짜 진짜 비밀은 텍스트가 되지 못할 수 도 있으니깐요.
아 당신이 나를 궁금하는것 만큼
나도 당신이 궁금했으면.
2020년 10월 5일 월요일
2020년 9월 5일 토요일
벌써
벌써 부터 내 나이름 깜빡깜빡합니다.
32살이였나 33살이였나.
그래서 누가 나이를 물어볼때 88년 생이라고 해주면
5초있다가 상대방이 제 나이를 계산해서 얘기를 해줍니다.
네 정확하게 말하면 전 33살입니다.
처음 33살 되었을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나이만큼 살았네 하고 신기해 했는데
한달 두달 지나가니 그것도 희미해졌습니다.
30년 정도 살았으니 30년 정도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0년 8월 15일 토요일
Love is losing Game
라이쉘트에 (독일에 있는 마트 이름)가서 장을 보고 이제 살것을 다 샀다 싶으면
과자 코너를 가거나 맥주코너를 갔다.
그리고 넓고 많고 수많은 종류의 맥주들 앞에서 무엇을 먹어야할지 한참 고민을 해야했다.
나는 그래도 밀맥주나, 기네스, 주로 한국에서도 익숙한 이름의 맥주를 골랐지만
경원이형은 나보다 2-3배 신중하게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선택을 하고 집?(교회지)에 돌아와 작은 탁자에 둘이 앉아 맥주 타임을 갖는다.
겨우 맥주 한 캔의 즐거움과 행복이 거의 우리가 갖고 있던 알 수 없는 어둠을 잠시 있게 해줬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이 였고,
사랑은 손해보는 선택을 기꺼이 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사람들이나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소름 돋는다. (어쩌면 질투가나서)
어떻게 그렇게 늘 이기는 게임만 할까? 하고 말이다.
2020년 8월 6일 목요일
마침표
2020년 8월 1일 토요일
8월
2020년 7월 29일 수요일
어느 비오는날
2020년 7월 23일 목요일
첫 줄
아침이 왔어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그 한 줄만 쓰면 어떤 글이라도 어떤 하루라도
잘할 것만 같은데 잘 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나이를 먹으면 더 쉬워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2020년 7월 21일 화요일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모기는 나의 피를
조금 높은 곳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들 피시방에서 나온 젊은이들,
부지런히 운동하는 사람들, 화장을 덜한 여자들 이런것들을 본다.
차가운 커피를 마시는데 오른손에 모기 한마리가 붙었다.
내가 빨대로 커피를 마시는 동시에 이 녀석도 빨대 처럼 생긴 자기 입으로
내 피를 동시에 먹고있는것 아닌가?
2020년 7월 12일 일요일
회복기의 노래
토요일밤에서 일요일아침까지 방전된 핸드폰 처럼 잠들었다.
그래도 뭔가 아쉬웠는지 블로그에 글 하나 남겨야지 하면서 컴퓨터를 켰지만
멍하니 깜박이는 커서만 10분동안 보았다. 결국 아무 글도 쓰지 못하고 잠이들었다.
아! 내가 피곤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 7시 30분부터 목원대학교 운동장에서 사카라는 팀과 축구 시합을
10시까지 했고, 집에와서 우리동네 석원이라는 아이 운전면허 필기시험 공부한다고
잠깐 봐줬다. 그리고 현규형이랑 영화반점에서 점심먹고 헬스장가서 1시간 동안
운동하고 집에왔다. 지난주와 거의비슷한 토요일이였는데 지난주에는 월요일 화요일까지
피곤함이 이어졌었다.
내 몸이 얼마나 활동을 하면 얼마큼 피곤한지 미리 아는건 정말 중요한것 같다.
살아가면서 보통의 날들도 보내야하지만 꼭 에너지나 집중을 요구하는 때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무리를 하면 그 만큼의 댓가을 톡톡히 받는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그래서 빨리 회복을 해야하기 때문에 일요일 아침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아무것도 하지않고 부족함 잠을 더 잤다. 그리고 겨우 일어나 교회에 갔다왔고
점심을 먹고 청소를 해야지 했는데,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나 청소를 부지런히 하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다행이도 지난주와는 다르게 빠르게 회복하는것 같다.
오래도록 걱정없이 잠을자니
물을 먹은 화분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밖에는 비가 오래도록 천천히 많이 내린다.
초록색 웃음들이 더 많아질것 같다.
2020년 7월 2일 목요일
위대한 용서비
2020년 6월 15일 월요일
주인
2020년 6월 13일 토요일
연필
할 수 있는게 줄어드는게 아니라
살아갈 날이 더 줄어드는것 같다고
그런 문장이 머릿속으로 글씨가 써지듯이 그려졌다.
주님 나를 사용하소서
짧아지는 연필같이
하얀 종이 같은 시간을
용감하게 밀고 나가게.
2020년 6월 12일 금요일
폭력의 역사
내가 처음 접한 폭력은 아버지로 부터이다.
60년대 즈음에 태어난 아버지는 술주정이 심했고
당신이 혈기왕성하던 30대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유리창을 교체할만큼 집은 어수선했다.
금요일 토요일저녁은 배갯잎이 눈물로 적지 않은 날이 없었다.
사람이 평생 울어야 할 눈물을 다 쏟았다.
그리고 어릴때는 동내마다 무서운형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락실을 다니거나 도직질을 하거나 가끔 친절하면도 있지만 꼭지가 돌면
주먹이 먼저 날라오곤했다. 내가 어린시절 뉴스에는 청소년 문제가 늘 보도됬다.
그들은 밤마다 맥주로 염색을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를 했고, 본드를 마시기도 했다.
키가 작고 부끄러움이 많던나는 학교를 다녀도 친구가 없고 말 수 가 없었다.
그런 소심한 내가 걱정되었는지 엄마는 태권도 학원을 보냈고
자의적든지 타의적이던지 몸을 단련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초등학교 시절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 나를 헤치질 못할 만큼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중학교 시절이 였다.
중학교는 너무나 커다란 세계였다. 복도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살만 많은 형 누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여러 초등학교에서 모인 친구들은 질서를 잡히지 않은채 눈치를 보며
누가 더 강하고 약한지 속으로 각자의 자리를 찾기를 원했다.
키도 작은 나는 가장 낮은 곳에서 부터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마다 싸움은 불가피했다.
나름 깡도 있고 운동신경도 있도 있던 나는 어느정도의 자리를 찾았고 만족했다.
문제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흔히들 말하는 짱인 녀석과 같은 반이 되었다.
엄석대 같은 녀석은 키도 엄청크고 성격도 불같았지만 또래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아 나는 선택의 길에 있었다. 그 녀석과 친하게 지내면서 평탄하게 보낼것인가 ?
아니면 눈치를 보면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폭력을 당하면서 살것인가?
답은 빨리 내려졌다. 나는 녀석과 친하기로 선택했고 부끄럽지만
엄석대에게 숙이고 들어와 평안했던 한병태 같았다.
그 시절 교복을 입은 남자 학생들이 10명넘게 일열 병대로 집으로 가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당시 티비드라마에서 학교가 나왔고, 영화는 맨 친구같은 깡패영화만 가득했다.
그렇게 대전에 있는 남자 인문계고등학교를 갔다.
아 지긋지긋한 이런저런거 신경쓰지 않고 입시가 중요한 학교로 갔다.
이제 폭력은 안녕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는 더 큰 세계였다.
남자학생들에게는 누가더 센지 누가더 약한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었다.
그건 바로 성적.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해서 누가더 좋은 대학을 갈지가 더 중요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치고 밖고 싸운적은 없었던거 같다.
그러나 이놈의 학교는 선생이 방망이를 들고나니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체벌을 했다.
시퍼란 멍은 엉덩이와 허벅지에 없는 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촌스러운 시절이다.
이상하게 학생에게 엄격한 처벌이 사라진건 교육부장관의 멍령도 아닌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였다.
그건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이 생기고서 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2006년이 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니 나는 이 지긋지긋한 체벌의 마지막 세대가 아니였을까?
2020년 6월 8일 월요일
이상한 월요일
혐오
내가 의도 했든지 의도하지 않았든지 이미 그렇게 되어버린
사람이나, 스타일이나 그런 모든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더 선명해지고 뚜렷해진다.
그렇지만 세상은 내가 아직도 모르고
나 또한 누군가의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
다름을 인정하고 친절하기
풀잎 사이 지가는 부드러운 바람같이 부드럽길.
2020년 6월 4일 목요일
기도
가장 오래 기도 하는 사람 때문에 퇴근이 늦어진다.
나는 초조해졌다.
기도하는 모습을 가만히 뒤에서 지켜보니 심장이 차분해졌다.
진실함이 통과하면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늘 그런 시간안에 머물고 싶다.
2020년 5월 30일 토요일
여름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서
봄꽃, 새잎, 바람, 봄비
우두커니 서있는 마음 모두 뒤로
기차는 앞으로 달리고 있다.
곧 6월이라는 정류장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새로움보단 인내를 요구한다.
그늘을 찾아 도망다니기 보단
나무처럼 햇볕을 당당히 받아들이길
모두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열매를 갖기를
2020년 5월 26일 화요일
월요병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일요일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일요일은 특히 예배와 단체레슨까지 마치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면 그렇게 하루종일 무기력 할 수 밖에없다.
분명히 눈뜨고 생활을 해도 보지 못하고
음악을 들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헬스장에가 가서 평소 루틴으로 운동을 해도 기운이차지 못하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고
화요일이 되면 다시 기운이 회복되어서 좋은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오늘이 딱 그런 화요일이였다.
새벽예배 드리고 맥도날드가서 맥모닝을 먹고, 평소보다 10분 일찍 퇴근했다.
스피노자를 읽고 가계부 정리를 했다. 가까운곳에서 건물을 짓고 있다.
쇠를 절단한는 소리가 쉬지 않고 울리고 있다. 어디는 도망을 가야한다.
조용한 곳으로 쉬고 회복 할 수 있는 곳으로
2020년 5월 21일 목요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독일어 어학원에서 현지인 선생님이 말 못하고 어리둥절 하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Das schwer? 어렵니? 그런데 schwer독일어 뜻에는 무거움이라는 뜻도 있다.
무거움-힘듬-그래서 어려움... 그랬다 독일어는 나에게 너무나 무거운 일이였다.
나는 그 무거움이란 단어를 들으면 시지프스 신화가 떠오른다.
신의 저주를 받은 시지프스는 지하세계의 어떤 높은 산기슭에서 커다랗고 동그란 돌덩이를정상까지 굴려 올려놓아야했다. 그러나 돌덩이는 다시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시지프스는 다시 그 돌을 산위로 올려야하고 다시 떨어지는것은 영원히 반복되는것이다.
지금도 시지프스는... 그러고 있겠지?
사람들은 이 이처럼 각자의 지겨움과 무거움을 갖고 살아가는것 같다.
그 무게와 종류는 각자 다르겠지만 . . .
시간이 정말 멈춰버린 군대에서 유일하게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힘든 일과를 마치고 아스라히 불게 물든 노을과 고요한 겨울 밤하늘 보초를 서면서 보았던 아름다운 별들.
힘듬과 무거움과 지겨움들 속에서 일용한 아름다움들이 나를 구원해줬다.
시지프스도 오늘도 그 아름다움 때문에 그 힘든 일을 해내고 있겠지.
2020년 5월 20일 수요일
안 해도 돼
그 중에 '안 해도 돼'라는 노래가 은근히 위로가 되었다.
한병철씨가 쓴 피로사회는 신자본주의 각 개인의 성과 무한경쟁때문에
개인은 자기를 착취한고 그로인해 현대인은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고,
바쁜것이 미덕이고, 늘 피로한 상태로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비판하였다.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자유. 만약 그 정도 까지 못간다 하여도
일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는 없을까? 안 해도 된다면 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우리들의 반짝이는 눈을 회복할 수 있다면
노자의 무위자연의 목소리가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지.
비틀즈의 let it be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안해도 괜찮은 건지
소비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족해야 하는지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해야하는지 아니면 혼자가 좋은 건지
무엇을 먹을지 아니면 한끼 정도는 굶어도 좋을지
어떤 선택도 자신감이 없다.
어떻게 아침 마다 해는 그렇게 자신감 있게 뜨고 주저함 없이 지는 지.
나무들은 때를 어떻게 알아 꽃피고, 열매를 맺는지
아무리 책을 읽어도 지혜는 모자르고
기도를 매일 해도 어리석기만 한지
나는 나를 아직 모르고, 매일 기다린다.
2020년 5월 16일 토요일
편리함속에서 불행하지 않도록
무슨 바람이 일어났는지 그 전까지는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운전면허를 갖고싶어서.
처음 가자마자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하는게 이상했다.
특히 얼굴이 붉고 짧은 흰머리 강사님은 내가 실수 할때마다 고함을 질렀다.
그 때마다 당황하고 난감해했지만 뭐 이런 강습방법은 집중하기 좋다고 생각되고
속으로 분을 삭히고 오직 운전을 배우는 것에 집중을 했다.
4시간 장내시험을 보는데 무사히 통과를 했다.
그리고 안전교육받고 필기시험을 봤는데 그것 또한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도로주행 기어를 변속하는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별탈없이 시험을 통과해 3월 초에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주변에서는 몇번씩 떨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줬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 어렵지 않았다.
23살에 겁없이 무면허로 50cc 오토바이를 1년 반동안 운전하면서 다닌게
도움이 됬다고 하면 도움이 되었다고 할까?
운전면허를 따고 보니 차를 하나 갖고 싶었다. 처음에는 형한테 차를 물려받을까도
생각했지만 형이 말을 바꾸는 바람에 허사가됬는데 마침 사촌형님이
가지고 있는 차를 폐차한다고 이야기를 해 저렴하게 차를 얻게되었다.
그게 3월 18일이다. 우와 나에게도 차가 생기다니..
이렇게 기분좋은날 기분도 낼겸 엄마를 태워서 퇴근을 시켜드리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퇴근시간이고 도로가 익숙한 곳이 아니라 간단히 접촉사고를 냈다.
당황했지만 얼른 아저씨한테 보험처리 해드리고 연락드린다고 말하고서
속으로는 엄청 당황하고 복잡했지만 안그러척 하고 집까지 왔다.
그게 첫번째 사고였고, 두번째 사고는 언젠가 저녁에 출근을 하는데
덕암동 쪽에서 빨간불에 핸드폰을 자동차 안에서 떨어뜨리고 그걸 다시 줍다가
브레이크를 놓쳐 앞차와 살포시 부딪혔다. 백프로 나의 과실인데
그 앞차에 동승자가 하필이면 임삼부라 굉장히 미안했다. 저녁이고
그곳에서 바로 보험담당자와 같이 처리하고 다시 아무렇지 않은척 출근을 하였다.
두번째 사고후 부터는 운전을 하면서 절대로 핸드폰을 만지지 않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아무탈 없이 지금까지 운전을 잘하면서 다닌다.
사람들에게 늘 얘기하지만 자동차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삶의 질이 너무나 달라졌다.
마치 편리한게 행복한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까지했다.
그러나 행복이란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단 걷는 행복을 많이 잃었고, 운전을 하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심리적인 긴장감이
여유를 많이 잃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 불편함이 불행이 아니다.
2. 편리함은 댓가를 지불해야한다.
3. 무엇이 있어서, 없어서 와는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없다.
편리함속에서 불행하지 않도록 이 세가지를 늘 생각하자.
2020년 5월 10일 일요일
비오는 아침
2020년 5월 3일 일요일
생일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준 사람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준 사람들중에서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들
고맙습니다.
2020년 4월 19일 일요일
아침의 공기
그 고요함, 그 냄새, 그 온도는 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눈을 더 맑게 떠주게한다.
몇 년동안 잃어 버린 좋은것을 다시 만난기분이든다.
물론 그 만큼 다른것들을 잃어버리겠지만 모든것을 만족한는 삶이란 있을 순 없는 법.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의 행복을 느끼고 그저 감사할 뿐.
멀리서 아침을 노래하는 새들이 있다.
나 또한 살아야겠다.
2020년 4월 16일 목요일
바보들의 세상
주제는 돈에 대한 이야기인데, 돈이 많은 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돈이 적을 수록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못하는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23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기타레슨을 성형외가 병원장의 어린 딸을 기타레슨을 하였는데
2주만에 어느정도 곡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기타를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복지관에서 부모가 돌보기 힘들 어린이들의 기타를 가르친적이있다.
무려 1년동안 매주 성실하게 말이다. 하지만 1년이 걸렸다.
아니 1년동안 수업을 했어도 부모가 잘 사는 아이의 2주보다 더 기타를 못 배웠다.
아이들은 너무 산만했고, 집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재밌는 점을 발견했는데
기타를 가르치는 동안 다른 아이들의 행동이나 말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것이다.
그래서 더 잘 웃고, 더 잘 슬픈녀석들이었다.
너무 예민한 공감능력 때문에 학습은 더딜지라도
그런 인간다운 인간때문에 세상이 좀 더 아름다운것 같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자신이 꿈을 위해서 무언가 노력하고싶을 때
돈 때문에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너무 공평하지 않자나.
2020년 4월 9일 목요일
33살 예수가 33살 나에게
딱 그만큼 살았는데 어떻게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그가 희생했을까? 나는 나를 위해서도 살기벅찬데 말이야.
오늘 아침은 그래서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기도했는데
마음속에 그런 울림이 생기네 "괜찮어"
2020년 4월 7일 화요일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2020년 4월 3일 금요일
장조림
예전에 베를린에 있을 때
장조림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갑자기 알 수 없는 고마움이
간장이 고기에 스며들듯이
내 몸속으로 스며들어왔다.
더 착하게 살아야지
더 잘해야지
더 부끄러움 없어야지
또 연약한 다짐을 하게된다.
2020년 3월 29일 일요일
벚꽃과 내가 기억하는 4월의 날씨
사진 때문일까? 3월말과 4월의 날씨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일단 벚꽃이 가장 멋지게 피우는 날은 4월 5일이다. 옛날에는 식목일이 공휴일이라서
학교를 가지 않은날 왁자지껄하게 사람들이 동네앞을 지나가던 기억이있다.
그리고 벚꽃은 1주일 이상 피우지 못한다는것 그리고 벚꽃이 지면 날씨가
빠르게 따뜻해 진다. 그리고 벚꽃이 피우기전 몇일은 정말 굉장히 춥다.
마치 겨울이 이별하기전에 마지막으로 이 땅위에 포옹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벚꽃이 피우는 동안 보통은 날씨가 흐리고 날씨가 맑은 날은 일주일중
하루 있을까 말까이다. 그러니 주말이고 화창하고 벚꽃을 볼 수 있는 해는 굉장히 운이 좋은것이다. 신탄진 봄꽃축제는 이제 사라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로하스 축제로 대체하는 것 같기도하고 유난히 봄에는 슬프고 안타까운일들이 많아서 축제가 취소되는 경우가 많은데
올해도 마찬가지로 코로나 때문에 축제는 없을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벚꽃은
해마다 더 웅장해지는데 사람들의 발걸음은 점점 줄어들어 개인적으로는 예전의 축제의 분의기를 느낄수 없어서 아쉽기도 하지만 한산하게 벚꽃 아래를 걷는일은 여전히 기분이 좋다.
톨스토이의 부활의 첫 문장으로 이 글을 마칠까한다.
몇십만의 인간이 한 곳에 모여 자그마한 땅을 볼모지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썼어도.
그 땅에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게 온통 돌을 깔아버려도. 그곳에 싹트는 풀을 모두 뽑아 없앴어도, 검은 석탄과 석유로 그슬려놓았어도, 나무를 베어 쓰러뜨리고 동물과 생들을 모두 쫓아냈어도, 봄은 역시 이곳 도시에도 찾아들었다.
2020년 3월 25일 수요일
지갑을 다시 찾았다.
선거철이기도 하고, 요즘 보험, 대출, 이런 전화가 많이 와서
보통은 전화를 받지 않는데 무심코 전화를 받았는데 경찰서에서 전화가 온것이다.
몇 일전에 일어난 교통사고 때문에 전화하신건가?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화해주신 여성분이 나에게 혹시 지갑을 분실하지 않으셨냐고? 물었다.
네 맞아요. 잃어버린지 5일만에 전화가 온것이다. 지금 서부 경찰서에 지갑이
보관되어있다고 전화해보고 찾아가라고, 시간이 4시 30분 정도되었다.
이미 카드는 분실신고했었고, 동사무소에서 가서 민증도 다시 재발급신청을 했다.
다만 운전면허증과 그 지갑자체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대전 서부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지갑을 찾아가도 괜찮냐고? 혹시 누가 발견했고
어디에서 발견되었는지 궁금해서 물었지만 잘 모른다고 대답하셨다.
지금 찾아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6시에 퇴근을 한다고 해서 입구 당직실에 맡겨놓으신다고 했다. 부랴부랴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는데 거리상은 짧은거리지만 퇴근시간이 걸려서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는 길이라 많이 어색했다.
도착해서 지갑은 인계받고 돌아올때는 갑천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집에왔다.
나는 지갑을 어디서 잃어버렸을까? 내 지갑은 어디서, 누가 발견했을까?
궁금함을 않은채 책상위에 지갑을 가만이 바라보았다.
찾.았다. 지갑속에는 두가지 궁금증이 들어가 있다.
2020년 3월 20일 금요일
지갑을 잃어 버리다
오늘은 어떻게 해야하나 머리 속으로 열심히 궁리하고 있었다.
왜냐면 평소와는 다르게 9만원치 책을 살 수있는 카드를 얻었기 때문이였다.
요즘 책을 살 형편이 되지 못해서 생각도 못했다가 뜻 밖의 기회가 생겨서
이 참에 내 책도사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마음으로 기분이 들 떴다.
아침에 퇴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깐 점심먹고 서점에 갈까?
아니면 운동을 좀 뒤로 옮기고 먼저 책을 사고 집으로 돌아올까?
두가지를 고민하면서 가방속에 지갑을 찾는 순간 어 ? 지갑을 잃어버린걸 알았다.
아 차에다 두고 내렸나? 하면서 차문을 열고 한참을 찾아도 나오지 않았고
여기 저기 옷 주머니 속을 보아도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혹시나 어제 저녁에 노래방에서 놓고왔나 싶어서 새벽에 노래방에 전화를 해봤는데
주인은 못봤다고 했다. 그러면 어제 저녁에 식당에서 밥먹었을 때 거기다 놓고 왔거나
아니면 집에 다 놓았나보다. 제발 그러길 바라면서 운동갔다 집에 오고, 어제 저녁을 먹었던
식당을 가보았지만 헛 수고였다. 갑자기 앞이 깜깜해졌다. 책을 사는 기회도 날아가고
지갑속에 잃어버린 각종 카드, 면허증, 주민등록증들 이거야 내가 다시 취소하고 등록하면되지만
책을 사려고 얻었던 남의 카드는 다른 사람이 직접 나때문에 수고스러워져야한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자초지경을 얘기하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나서 은행에가서 카드 재 발급을 받고 동사무소에 들려서 민증도 신청했다.
다시 나오려면 2주 정도 걸린다고 한다. 아침부터 잃어버린 지갑때문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나 너무나 지쳐버렸다. 다시는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속으로 다짐을 몇번이나 했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찮고 나 자신에 대해서 실망도 했지만 어느정도 잘 극복한거 같아서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문제 앞에서 솔직하고 정직하게 반응한 내가 좋았다.
다시는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지. 소중한 것들을.
2020년 3월 17일 화요일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안녕
그렇게 바쁘게 지낸것도 아닌데, 무엇가 마음이 심란했던것 같아.
겨울이였고, 분명히 2월 달까지는 공연준비로 분주했고, 그 이후에는 코로나유행.
모든 핑계들이 하나둘씩 시간 덕분에 사라지니 그 동안 생각했던것 느꼈던 행했던 일들
조금씩 기록하려고해 나를 위해서.
우선 나의 하루를 소개 해볼께 아니 요즘 내가 하는 일 부터 얘기해야지.
지난 해 10월 2째 주부터 선창교회에서 일하게되었어.
내 근무시간은 밤 11시에 출근해서 아침 7시까지 퇴근인데
그 동안 교회를 지키는 일. 말하자면 경비같은 일이야.
다행이도 밤 11시 부터 잠을 자도 되는데 4시 쯤 일어나서
아침예배를 할 수 있게 문을 열고 히터도 틀고, 여러가지 업무를 하고
음악도 미리 틀어놓지 일의 갯수는 많은데 이제는 몸에 습관이 배겨서
요행도 생기고 실수도 없이 잘 하고 있어. 문단속 하고 7시에 퇴근을 하는데
용문역에서 703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거의 한시간 정도되지.
그럼 집에 8시에 도착하고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거야.
한 시간 동안.
그리고 9시에는 운동하러 헬스장에가 이제 거의 2달된것같아. 1년치 형이 결제해놓았는데
형은 게을러서 그냥 내가 다니고있어. 나도 게으른 사람인데 나보다 더 게으르거든.
원래 나 달리기 운동 꾸준히 했자나. 그런데 겨울에는 달리기가 쉽지 않더라고
헬스장가면 우선 1시간정도 런닝 & 걷기 하고 그 다음에는 무산소 운동한 30~40분하고
스트레칭하고 샤워하고 집으로 오지.
그럼 엄청 배고프거든 운동도 했지 저녁 이후로는 아무것도 안먹으니깐
2층에 올라가서 냉장고에 이것저것 꺼내서 푸짐하게 배부르게 점심을 먹어.
거의 혼자서 먹는데 요세는 할머니도 코로나 때문에 노인정을 못가서 같이 먹기도해
그리고 오후 부터는 자유시간인데 날씨좋으면 바깥에 산책도 하고 그럴텐데 요세는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아! 레슨있는 날은 레슨도 하고.
굉장히 밀도 없는 시간을 보내 그리고 저녁 7시에 저녁을 먹고
9시30분에 다시 일을 하러 출발을 하지.
이상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나의 하루하루야
아침에 일찍일어나 해가 떠오르는 빌딩속을 걷다 보면 알 수 없는 희망과 힘이 생겨.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걷는 속도로 너에게 가까워지고 느껴지는데
그때까지 부디 건강하고 밥 잘 챙겨먹고 많이 웃어야해.
성장
내가 어렸을때 소풍을 가서 잔디위에서 한참을 노는데 잠깐 자리를 비우는 사이 다른 사람이 내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분명히 내 공인데 부끄러운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공을 달라고 말하지 못했었다. 나는 분명히 무언가 두려웠고, 미안했고, 용...
-
‘not a fan 팬인가, 제자인가’ 를 읽고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성경구절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
-
제자훈련을 마치며, 박용섭 제자훈련은 사실 내가 간절히 원해서 시작하기 보단 목사님의 요구로 시작하게되었다. 내가 청소년목장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래 청소년 목장은 내가 하기로 선택한거니깐 , 수수료라고 생각하자....
-
DIY 백열전구 설치하기 준비물 : 소캣, 전구, 드라이버, 펜치, 전기테이프 아무것도 설치 안되있는 전기선 작업끝~ 침대위에 조명하나 부족해서, 언젠가 연결해야지 했는데 마침 시간이 있어...